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2_1 접촉자와 전달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12. 12:19

-두 사람


  언듯.. 서늘하다는 기분이 들어 눈이 떠졌다. 옷을 입고 있던 채로 잠들었던 것일까 침대위에는 PMP와 휴대폰이 아무렇게나 늘어져있었다. 얇은 이불이라도 덮고있다면 나았을텐데 몸을 덮을 만한 이불은 침대밑에 뭉쳐 뒹굴고 침대위에는 내 몸만 올라가 있을뿐이였다. 그래도 옷도 입고있는 편인데 이렇게 추울턱이..
 원인을 찾기 위해 방안을 둘러보자 어렵지 않게 방문과 창문이 모두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으.. 추워죽겠네.."

 엉금엉금 기어 문을 닫고 침대위로 돌아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뭘하다 잠들었더라..
왠지 데자뷰라도 겪은것 처럼 익숙한 상황인데다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것 같았다.

 골목길,가로등, 여자, 손수건안의 물건, 총소리
 
 왜 잊어먹고 있던 것일까. 머리가 번쩍 뜨여 황급히 닫아두기만한 방문을 잠궈버리고 창문의 걸쇠도 내려버렸다. 그렇게 두려워 하며 도망을 쳤는데 방에 돌아와서는.. 돌아와서는.. 돌..
 "휴대폰!!"
 전화를 받았어야 했는데 깜빡 잠이든것인가. 왜이렇게 정신이 없는거지.

 황급하게 휴대폰을 찾아 통화목록을 뒤져봤다. 크게 변한것이 없는 목록의 제일 상단에 모르는 번호가 하나, 정상적으로 등록된 것으로 보아 통화는 했던것 같았고 그외 다른 번호는 찍혀있지 않았다.

 - 수신통화 : 181-4400

 그런데 번호가 상당히 묘했다. 대부분 010이라던가.. 아니면 지역번호라도 붙는게 정석일 터인데 그저 7자리뿐인 전화번호라. 거기다가 이상하게도 무슨 내용으로 통화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인지 확인부터 해야할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어보기로 하였다. 경찰서의 번호일수도 있고 형사나 그 관계자들의 번호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 다시 잠들기전 편의점의 총소리때문에 경찰에 신고한 기억이 있으니까 말이다. 
 
 -뚜루루.. 뚜루루..

 수화기에서 신호음이 들리는 와중에도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았지만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짜 경찰이였을까. 편의점의 무장강도가 내 번호를 알고있을 턱도 없으니 분명 경찰이겠지. 잠깐의 신호음이 울리고 이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에..?"
 -에..?
 "장난 전화였던가. 이거.."
 -장난 전화였던가. 이거..

  한참 긴장하고 있던참에 걸어본 전화가 결국 장난전화였다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건 입장인데 장난전화라고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런식으로 다시 전화를 걸게 해서 통화료를 챙겨먹는 신종 낚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보기좋게 걸려든 셈이되겠군.

 -우웅 -우웅

 휴대폰을 책상위에 내려놓기도 전에 손안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수신중 : 164-8574
 또 다시 7자리의 전화번호다. 방금 걸었던 전화번호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럼 또 아까와 같은 장난 전화 일지도 모르는데 궂이 받을 필요가 있는것일까. 
 
 "여보세요?"
 [ 귀하께서는 3차 실험 대상자이십니다. ] 
-백 육십 사만 팔천 오백 육십 구

 "실험 대상자?"
 [ 해당 실험에 대한 거부권은 없으며 이것은 2차 피드백(FeedBack)에 대한 응답입니다. ]
-백 육십 사만 팔천 오백 오십 일

 "뭐야 이거 진짜 장난 전화인건가."
 [ 접촉자(Contacter)와 전달자(Messenger)를 구분하시기 바라며  전달자의 주의사항과 지령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
-백 육십 사만 팔천 오백 삼십 삼

 "..."
 [ 실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려 주는 것은 전달자의 역활이며 .. ]

 온통 알 수 없는 이야기.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음성은 차츰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작지만 뚜렷하게 들리는 숫자를 읽는 듯한 음성과 조금 더 명확하게 들리는  자동응답기의 지직거림. 
 몇분이 더 지나고 더이상 수화기에서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게되자 온몸의 힘이 쭈욱 빠지고 말았다. 아무렇게나 놓여진 휴대폰을 멍하게 바라보며 방금전 까지 들었던 응답기의 음성을 되뇌여 봤다.

 만약 그 음성이 거짓이 아닌 진짜라면, 얼마전까지 겪었던 일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웃기지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시점부터 가슴속에 뭉쳐있던 답답함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고 응어리 진것같은 허파속의 공기를 한번에 토해내며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웃기지마!! 왜 하필 나인건데!!!"
 
 "운. 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내 고함소리에 나타난듯 어느틈에 들어온 것인지 모를 남자가 방문앞에 서있었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자 그 남자는 살짝 비웃듯 입꼬리만 올려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서호씨죠?"
 까만 가죽자켓 찔러 넣었던 손을 빼고 책상의자에 걸터 앉은 남자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실실대고 있었다.

 "저는 전달자(Messenger)입니다. 무슨이야기인지 방금 전화를 받아봤으니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화는 거짓이 아니였던것 같다. 이 남자는 방금전까지 나에게 걸려왔던 정체 불명의 통화 내용에 대하여 알고 있는것이 확실했고 자신 스스로를 전달자(Messenger)라고 칭하고 있었다.

 "전달자의 역활은 지금 서호씨가 겪고 있는 일의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이야기 해주는것은 변하긴 하지만 확실한것은 제가 이 실험에서 당신에게 가장 도움되는 역활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던 그는 결국 라이터가 없었는지 담배를 다시 담배갑에 집어넣었다. 전화와 같이 이 사람이 전달자라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의지해야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어째서 내가 이 실험에 참가하게 된건지. 어떤식으로 진행되는 실험인지도 명확하게 알고있지 않다.

 "궁금한게 많으실테지만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저와 만나는것은 처음이죠?"
 "네..아마도.."
 분명 이 남자와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전화기에서는 2차 피드백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1차에서는 접촉자(Contacter)를 만난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억이 없는것인지 알 수 가 없다. 
 
 "무작위로 선출된 실험이니 만큼 실험 종료 후에 피 실험자 분들에게는 상당한 금액의 보상금이 지급됩니다만 솔직히 저도 이 실험에 대해 그다지 찬성을 하는 편은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실험인 겁니까. 방금 전화내용이 사실인겁니까."
 남자는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담배를 한개비 입에 물었다.
 "혹시 불 좀 빌릴수 있을까요?"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방치되었던 라이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칙 칙
 담배 끝에 불이 붙자 맛있는듯 깊이 빨아들이며 뜸을 들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악마와도 같아 보였다.
 "후~~우.."
 길게 연기를 뿜어낸 그는 다시 한번 씨익 웃어 보고는 품에서 자그마한 종이조각을 꺼내 들었다. 
 "제 명함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니 내일 아침 10시 그 명함에 쓰인 장소에서 뵙도록 하지요." 
 
  명함을 건네준 그는 더이상 볼일이 없다는듯 방을 나가 버렸다.
 
 그가 떠나고 그의 명함에 남은것은 그의 이름과 직업이 적혀있었고. 그 뒤에는 볼펜으로 그가 만나자고한 장소가 적혀있을 뿐이였다.

 "씬 아울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