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2_2 유영아와 최미호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14. 21:38

 "..."

 여전히 아무말없이 앉아있다. 이 여자.. 정체가 뭘까.
 "커피.. 마실래요?"
 커피 포트를 들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도 그저 방구석을 응시하고 있을 뿐. 그나마 내가 알 수 있는건 무엇인지 때문인지는 모르나 상당히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말도 하지 않을거면 무엇 때문에 이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누구한테 쫒기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래도 분명 나에게 용건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면 별수 없지요. 잠깐 쉬었다가 가도록 하세요."
 뭐하는 여자인지 정체도 모르는데 계속 같이 있을만한 이유도 없고. 혹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당장 내 쫓아 버리고 싶은것도 사실이다.

 "저도.."
 커피 포트를 가져다 두려 뒤돌아서려는 찰라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이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게 되었어요."
 "네?"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이 여자. 

 "당신.. 4차 실험자죠?"
 "아.. 그 전화하고 관계있는거에요? 당신?"
 아아.. 아마도 이 여자는 아까전 왔던 장난 전화와 관계가 있는 모양이였다. 그저 피싱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진행을 하는것이긴 했나보다.
 "뭐에요? 그 실험이라는게.."
 "저도 확실히는 몰라요. 잘은 모르지만 피실험자들에 따라 실험내용이 다 다른것 같은데 접촉자하고 전달자가 있는건 같아요. 전 당신을 만나러 올 전달자(메신져)하고 만나봐야해요. 너무 오래 '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대기' 하고 있었다니요? 그보다 좀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세요."
 이야기를 하는내내 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상당히 여린 성격의 소유자인지 아니면 엄청 호된일을 겪었다던지 둘 중 하나인가보다.

 "제가 알고 있는것이 전부 진실인지는 저도 이제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것은 이 도시, Not-none에 살고있는 사람들중 몇몇을 임의로 추려 피실험자로 쓰고있는것 같아요."

 "도시..에서 라면 국가에서?"
일반인을 임의로 추려서 실험을 진행하다니 간단한 설문조사도 아니고 그렇다면 국가급에서 이일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국가에서 이런 실험을 벌이는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얻는 것인지.. 그보다 제가 만나본건 1차 실험자이고 저는 2차 실험자에요. 5일전 전달자하고 만났을때 거의 모든것을 들었는데 지금 몇번째 실험자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저희와 다른곳에 가있어서 연락 할 수 없다고.."
 
 1차 실험자는 뭐고 2차 실험자는 뭐란말인가..  내가 4차 실험자이니 3차 실험자인 위인도 있을테고 5차나 6차도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잠깐! 잠깐만요! 이야기의 순서가 잘못되었잖아요. 일단 당신 누구에요?"
 한번 말문이 튼 여자는 한도끝도 없이 도통 영문모를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이 사람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누구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아 죄송해요. 너무 정신이 없다보니.."
 여자는 잠깐 숨을 돌려 진정하더니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OO대학 1학년 최미호라고 해요. 이 실험의 2차 실험자이고 제가 받은 지령은 모든 실험자를 만나보라는 것이였어요. 처음 1차실험자를 만날 때까지 만해도 별 탈이 없었는데 어느순간에 접촉자를 만나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접촉자라는게 뭐에요?"

 "이 실험에는 전달자 라는 도우미와 접촉자라는 방해꾼이 있어요. 하지만 누가 접촉자고 누가 전달자인지 알 수 가없어요.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거든요. 그들도 이렇다 할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보수를 받고 우리와 같이 이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일뿐이에요. 하지만 만약 전달자보다 접촉자를 먼저 만나게되면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나요."

 아까 전화에서 나왔던 접촉자와 전달자를 구분하라는 내용이 이거였는 모양이다. 그럼 아까의 음성을 다 들어두는것이 유리하지 않았을까. 그보다 이 여자는 전화내용을 전부 들었는지 꽤 상세하게 알고있네. 

 "혹시 처음 전화 걸었을때 전화에서 뭐라고 하는지 기억해요?"

 "전화.. 대부분..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는데 그 전화번호 자체가 카운트다운이에요. 아마 제일 처음 오는 번호가.."
 "181-4400 이던걸로.."
 휴대폰을 뒤적거려 지난 통화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가장 처음 왔던 7자리 전화번호를 확인하였다. 181-4400.. 두번째 왔던 번호가 147-8957.. 꽤 많이 낮아졌다.

 "번호 전체가 실험의 남은 시간을 초단위로 나타내는 것인데 1814400은 총 21일 그러니까 3주를 나타내요. 처음 실험자로 선정되었을때 최초 피드백이라고 하면서 181-4400에서 전화가 오는데 1478957이면.. 4일정도 지난거군요."
 종이에 숫자를 나열해가며 시간을 계산하던 미호는 두번째 왔던 번호를 보고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부재중 통화로 왔던것이 확실히 4일 전이였던 것 같으니 그녀가 하는 말이 맞는것 같았다.

 "전화가 오는시점은 언제인거에요?"
 "제일 처음 실험자로 선정되면 최초 피드백이라면서 전화가 오고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때마다 몇번째 피드백이라면서 통화가 되돌아 와요. 만약 처음 전화가 왔을 때 받지 않은채로 지나가면 일주일 안으로 접촉자가 만나러 온다는것 같아요. 대신 부재중 통화라도 다시 걸게되면 최초 피드백으로 인정되고 그때부터 카운트를 다시 확인할수 있어요.  카운트 다운을 확인 할 수 있는 횟수는 다섯번 정도고 그 다섯번을 다 쓰고나면 통화가 되지 않아요. 통화 할때마다 실험에 대한 내용을 조금씩 알 수 있고  한번 연락 할때마다 접촉자 혹은 전달자를 만날 수 있어요. 저는 다섯번을 다써버려서 이정도 이야기를 알수 있는 거에요."

 한번 전화를 할때마다 접촉자나 전달자를 만나게 되고 만나는 사람이 접촉자일때에는 실험에 지장을, 전달자일때에는 조언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접촉자를 전달자 보다 먼저 만나거나 접촉자만 만나게 될시에는 실험자체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구체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다섯번을 전부 사용하고 나서인데.. 다섯번을 전부 듣고 일주일내로 지령을 마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접촉자에게 살해 당 할 수도 있어요. 저는 다섯번을 다 확인하고 5일이 지나버려서.."
 
 그렇다면 이 여자에게 남은 시간은 이틀? 그정도 인걸까. 
 
 
 
 "반칙입니다."
 
 분명 잠궈놨던 현관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무슨 이야기를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전달자나 접촉자에게 듣는것이 원칙이에요. 그렇게 이야기 하고 다니시면 곤란합니다 최미호씨."
 미호는 남자의 모습을 보더니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았다. 방금전까지 불안에 떨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던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였다.
 "아. 당신이군?"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간 최미호는 선반에서 꺼낸 부엌칼을 손에 쥐고는 남자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난 갑자기 돌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유영아씨 맞으시죠? 4차 실험자이신.."
 "마.. 맞는것 같은데요."
 나는 현관에 서있는 남자와 부엌칼로 그를 위협하는 최미호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당황하고 있었다.

 "이번 실험에 전달자(Messenger)역을 담당한 오길훈입니다. 최초 피드백으로 인해 이곳으로 호출됐습니다. 보아하니 접촉자보다는 빨랐나보군요."
 
 전달자라는말에 실험의 실감도 났지만 접촉자라는 사람을 먼저 만나지 않은것을 내심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뒤에서 날카로운 최미호의 외침이 들여왔다.

"언니! 이리오세요! 저 남자가 하는말은 듣지마세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채 칼을 겨누고 있는 최미호를 보며 남자도 당황했는지 양손을 살짝 올리고 피하고만 있었다. 최미호는 부엌칼을 쥔채 점점 나에게 다가와 자그맣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접촉자(콘텍터)에요."
 단 한마디에 그녀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뭐야..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가야 하는 실험이였던것인가. 

 "최미호씨 필사적이 되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만.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일단 칼은 내려놓으시죠? 그리고 유영아씨 지금 최미호씨 막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그녀와 나는 그 남자와 의자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현관이 가까워지자 칼로 노리고있는 그대로 아무신발이나 챙겨신은 우리는 서로 신호를 보내곤 집 밖으로 뛰쳐 나갔다. 

 ◇

 유영아와 최미호가 도망치고 방안에 홀로남겨진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