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3_1 셋과 하나 그리고 연산자 마이너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21. 23:11



 모든것이 조금씩 미묘하게 변해있었다. 
 원룸을 나와 바로 보이는 골목길도 어쩐지 다르게 느껴졌다. 멀리 보이는 풍경도 다른것 같지만 또 어찌보면 같은 것도 같고. 
단 하루 사이에 자신 주변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는건 무엇때문인지 알 수 가 없었다. 

 하지만 큼직한 고가도로 역시 그대로.  
 그 아래를 지나 시내를 벗어나는 길목까지 왔음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위화감은 나를 불안하게도, 혹은 불쾌하게도 만들고 있었다. 이틀전 밤 편의점에서 겪었던 강도사건부터 시작해서 지금 만나러 가고 있는 전달자라는 인물까지 일상이 미묘하게 변해버렸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아마 그 강도사건 역시 이번 실험의 일부가 아닐까.
 진행하고 있다는 실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나로썬 그저 실험실의 생쥐 같은 기분이다. 어느 높은 분의 지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은 나를 쥐색기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 그대로. 鼠(쥐 서) 呼(부를 호)라고 말이지.
 
 명함의 주소대로라면 시내는 벗어나 꽤 멀찍하게 떨어져 있는 상가중 하나 일 것이다. 그저 원룸주변이나 시내 일부분만 돌아다녔을 뿐이지 아직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녀보지 못해 '씬 아울렛'이라는 곳은 본적이 없었다. 이름으로 봐서는 옷가게나 신발가게 같은 느낌이다. 분명 명함으로 봐서는 경찰인것 같은데 왜 옷가게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일까. 




 "여기입니다 여기."

 남자는 새카맣게 타버린 잿더미 안에 서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씬 아울렛이 '있던' 자리가 맞겠군요. 주소와 간판으로 잘 찾아 오실거라 믿고있었습니다."

 집에서 나와 미묘하게 다른 골목과 거리를 지나 기억에 있던 머릿속의 지도와 건물들을 검색하고 끝내 도착한 씬 아울렛은 새카맣게 타버린 삼층 건물이였다. 남자의 손짓에 이끌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내용물은 전소해버려 남은것이 없지만 그나마 건물의 외벽이라던가 내부 칸막이 정도는 남아있는 그저 건물이라는 흔적만 남은 시체 같은 모습이였다. 
  "한 분이 더 오시기로 되어있지만 서호씨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으니 그냥 진행하도록하죠."
 다른 사람이라는건 아마도 다른 피실험자는 말하는 것이겠지. 
 "그 사람도 피실험자입니까?"
 "맞습니다. 이서호씨가 3차 실험자 이시고. 이제 조만간에 도착하실 분이 1차 실험자 '였던' 분입니다. 제가 이렇게 나올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이왕 전달할거 수고를 조금 덜기위해서 이리 부르게된거죠."
 1차 실험자면 1차 실험자인거지 1차 실험자'였던'것은 또 뭐란말인가. 

 "겪어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실험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친절 합니다. 실험 대상자가 되는것도 무작위 인데다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걸려오는 휴대전화의 내용을 듣거나 저같은 전달자를 만나야 하는것이죠. 하지만 1차 실험자 분께서는 휴대폰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도 않으셨고 그로인해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하고 제한기간을 지나버리게 되었습니다."
 
 "제한기간요?"

 잠시 말을 멈춘 남자는 자켓 한쪽에서 어제도 봤던 싸구려 담배를 꺼내들었다. 또 한번 뜸을 들이는가 싶었지만 그저 담배를 태우고 싶었던것 뿐인지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이는 와중에도 충실히 질문에 답해주고 있었다.

 "실험이 시작되고 3주간입니다. 21일이죠. 처음 서호씨에게 걸려왔던 전화번호 자체가 카운터입니다. 뭐.. 전화 내용을 전부 들으신것 같으니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화에서 들었던 내용이 사실이라면. 실험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거나 기한이 지나버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던데 그건 무슨이야기죠?"
 "의미 그대로입니다. 실험을 충실히 진행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불성실하게 진행한다던지 애초에 진행을 하지않는다면 실험 자체에서도 쓸모가 없어지겠죠. 보안을 위해서도 제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나마 그을음이 덜한 책상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남자는 털썩하고 책상에서 내려와 구석에 있던 철제 캐비넷을 열었다. 황당하게도 새카맣게 타버린 캐비넷 안에서 노란 서류철이 튀어나왔다. 
 "이곳이 저희 실험의 사무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는 옷가게와 다른 사무실이 있던 건물이지만 마침 불도 났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만한 곳에 서류를 보관해야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군요. 이게 여러분들에 대해 적혀있는 자료들이죠. 이름, 얼굴, 인적사항 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기록이 적혀있습니다. 보고싶으신가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저런 문서를 순순히 보여줄턱이 없지않을까.

 "보고싶으시다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조건이 붙습니다만.."
 "뭐죠. 그 조건이라는것."

 "실험의 기간을 줄이는 것으로 하죠? 그것도 아주 짧게 말이죠."
 하루 빨리 이 실험에서 벗어나고 싶은것이 현실이지만 자칫하다간 기한을 넘어버릴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도 않은게 저 정보를 볼 수 있다는것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유리하게 진행 될 지 모른다. 

 "그 조건 받아 들이죠. 얼마나 줄어드는겁니까."
 "원래는 21일, 즉 3주였던 실험 기간을 1주로 줄이는것으로 합시다. 물론 시작날부터 계산해서 말이죠. 그러면.. 지금이 3일째니 4일 남으신것 이겠군요. 이 서류철은 돌아가실때까지 열지 마시기 바랍니다. 뭐. 그것도 조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군요."

 - 우웅 우웅

 남자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 수신중 : 30-1675

 휴대폰에 나타난 번호는 7자리에서 6자리로 변해있었고 자세히 들어보니 자동응답기라 생각했던 반대편의 통화자는 그저 내쪽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듯 일방적으로 '읽고'있을 뿐이였다. 
수화기에서는 3차 피드백이라는 말과 함께 눈앞의 남자와 했던 전체실험의 기한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한참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고있자니 어떤 남자가 건물 입구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사람 있습니다!"
나와 같이있던 남자가 소리를 지렀고 잠시후 다 타버린 건물 안으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환자복..?'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이상하게도 병원의 환자들이나 입는 흰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쪽 손은 다치기라도 한것인지 붕대로 감고 있고  꽤 급하게 달려왔던 것인지 숨도 거칠고 옷도 엉망이였다. 그리고는 울것만 같은 얼굴로 나와 같이 있던 남자에게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저 몰랐다구요. 네? 다시 기회를 줘요. 이렇게 죽고싶지 않아요. 벌써 몇번째 인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정말 미칠것만 같아요."
 아마도 1차 실험자였을 남자는 꽤 젊어보여 나와 나이또래가 비슷해 보였다. 스무살? 스물 두살? 

 "네네. 기회를 다시 드리려고 이렇게 부른겁니다. 일단 서로 인사하시죠. 이쪽은 3차 실험자이신 이서호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시..실험자...."
 그는 힘없이 대답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 이외에 다른 실험자를 봐서 그런것인지 몰라도 꽤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였다.
 
 "이쪽은 1차 실험자이셨던 이민철씨입니다. 1차 실험은 소거 되었으니 이제 5차 실험자로 등록되시겠군요."
 자신의 자켓에서 평범하게 생긴 휴대폰을 꺼내어 이민철에게 건네준 남자는 다 타버린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다시 새로운 담배까치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이민철이 휴대폰을 받은지 5초도 되지 않아 그의 손에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즈즈즈 즈즈즈
 그는 조심스레 휴대폰의 폴더를 열어 귀에 가져다 대고는 겁에 질린 쥐마냥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폰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이민철씨는 마저 피드백을 듣도록하고. 서호씨는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한동안 이민철이라는 남자가 벌벌떠는 것만 보고있다보니 조금 기분이 묘했는데 남자가 마침 돌아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바삐 걸어 그곳을 빠져나오려 하다가 머리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깐만요. 그러고보니 저한테 전달할 지령같은 것은 없는겁니까. 그저 기한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지 지령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한것 같은데요."
 그제서야 남자는 깜빡했다는듯 제스쳐를 취해보이며 내가 들고있는 서류철을 손으로 가리켰다. 
 "돌아가셔서 그 서류철을 열어보시면 알게될겁니다. 명심하세요. 집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류철은 열어보면 안됩니다."
 "아.. 네."

 
 나는 금새 이민철과 전달자라는 남자를 뒤로하고 다 타버린 씬 아울렛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한참을 걸어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조금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 서류철의 내용이 궁금하여 택시를 타고 돌아가려 했지만 씬 아울렛이 있던 외딴 상가를 벗어나고 고개를 넘어 큰길로 들어설때까지 택시는 커녕 차량 한대 지나가지 않아 무작정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평일 낮이라고해도 원룸에서 나서면서 부터 차를 단 한대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닳게 되었다.
 아무리 다른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고 해도 차가 없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니.. 이상한 일이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손에 들려있는 노란 서류철의 내용물이 궁금해 빨리 돌아가려 했던 것인데 이렇게 계속 택시는 고사하고 자동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면 집에 빨리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게 뻔했다. 그렇다면..

 -달칵
  서류철의 잠금이 간단하게 풀리자 나는 이내 서류철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서류철을 열고 한참을 뒤적거렸지만 종이에는 한참동안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고 점점 불안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 할 즈음 거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서야 지금의 상황을 알아챌 수 있었다. 

 "... 마.. 말도 안돼.."

 





안녕하세요 이서호씨. 접촉자(Contacter) 백길훈 입니다.
아마도 이 문서를 보고있는 장소는 돌아가는 길이겠죠. 
이곳에는 택시는 물론 일반 자동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걸어가는 도중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봤으리라 생각됩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접촉자의 역활은 피 실험자들의 진행에 방해를 하는것이 목적입니다.
아마도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면 진짜 전달자(Messenger)인 오길훈이 기다리고 있을것입니다.
지령을 전달하는 것은 제가 아닌 오길훈의 몫으로 모든 진실은 그에게 듣기바랍니다.

저는 그저 '거짓말'을 하는 역활이니까요.

P.S 실험기간이 줄어든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문서를 봤다면 4일뿐이 남지 않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