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3_2 둘과 넷 그리고 연산자 플러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24. 17:28


 
 아직 비가 완전하게 그치지 않아 옷이 조금씩 젖고 있었지만 우리는 비를 피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더 그 남자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려 사력을 다해 뛰었다. 내 오른손으로는 최미호의 왼손을 잡고 있고 또 최미호의 오른손에는 방에서 들고 나온 부엌칼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골목도 벗어나고 가로등 뿐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도로로 나오자 그제서야 도주의 속도를 늦추게 되었다. 
  “이쯤이면 그렇게 금방 따라오지 못할꺼에요.”
“이..이렇게..하아.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거였어요? 이 실험이라는 것..?”
 최미호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 남자와의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다. 아니면 그녀가 과민반응을 보인 것 이라던가. 하지만 이렇게 과격한 행동까지 해야 할 만큼 심란한 실험이라면 일단 이 실험을 관두고 싶다.

“이 실험이라는 것 관둘 수 는 없는 건가요?"
“저도 그만 할 수 있다면 예저녁에 그만 뒀을거에요. 하지만 휴대폰으로 연락오는 것으로는 대화가 안되고, 접촉자와의 만남은 위험하고, 그나마 전달자하고 만나서 이야기 해야하는데 전달자를 만난다고 해도 이 실험에서 도중에 빠져 나가는건 무리라고 생각되요."
 
 너무 갑작스럽게 꽤 먼거리를 달려오다 보니 둘다 이내 지쳐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최미호가 말한 접촉자(Contacter)가 언제 우리를 따라 잡을지 모르니 멈춰 서버리기 보단 조금 빨리 걸어 골목사이로 숨어 따돌리는 것이 좋을듯 했다.
 그렇게 다시 십여분을 더 걷고 꽤 외진 곳에 자리잡고있는 놀이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안심이다 싶어 잠깐 쉬어가기로 결정한 우리는 어둑한 놀이터의 평상에 걸터 앉을수 있었다.

 "최미호.. 라고 했죠?"
 "네."
 나보다도 몸도 약해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위협인지 방어인지 분간안되는 짓을 하고 더불어 이렇게 독하게 도망쳐야 하는 실험의 내막이 궁금했다. 그녀는 왜 이리 필사적이 된것일까.

 "무슨일이 있던거에요? 아까는 자세히 듣지 못했었지만 지금이라면 잠깐 이야기 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하아..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한숨을 깊게 내쉰 그녀는 손에 들려있는 부엌칼을 가로등불에 살짝 비춰 보곤 자신의 옆에 칼을 내려놓았다. 
 
 "저도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이 실험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고 한번 실수를 저질러 버려서 지금은 조금 막다른 길에 몰렸어요."
 "그 실수 라는것이 아까 그 남자를 만난것 말인가요?"
 "..."
 내 질문에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대답하기 싫을 수 도 있고. 무엇보다 이 실험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비밀도 많고 복잡해보이는 것이 지금으로썬 이야기하기 곤란할지도 모른다.
 "대답하기 어려우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요. 사정이라는게 있는것이겠죠."

 한참을 말없이 않아있던 와중 슬슬 기운도 회복했고 무작정 도망만 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것 같아 앞으로의 행동 방안에 대하여 의논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녀는 멀지 않은곳에 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같이 살고있다고 하니 일단 오늘은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언제 다시 아까 그 남자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시간을 보내 이 이상한 실험에서 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인 만큼 내일 아침 혹은 점심에 다시 전화를 연결하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전달자와 접촉자는 각각 한명씩 두명이라고 한다. 내일 전화를 걸었을때 아는 얼굴이라면 접촉자, 모르는 얼굴이라면 전달자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하고나서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즈음, 그녀가 이상한것을 물어왔다.
 "그런데 언니. 혹시 언니 옆방에 살고있다는 선배, 어디있는지 알고있어요?"
 "선배? 잘 모르겠네요."
  그저 학교 선배 일 뿐 제대로 말도 걸어본적도 없는 사람인데다 얼마전에 실종되버린 남자. 그저 옆에 살고있었다는 이유 하나와 약간의 학연 탓에 4일이나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요 몇일이 생각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틀전 원룸 근처에서 발견돼었다던 변사체도 선배가 아니였다고 하니 도데체 어디간것인지 내가 알턱이 없다.
 "한 나흘됐나. 한밤중에 엄청 난리를 피우곤 사라져버렸어요. 실종이죠. 경찰에서도 한참 조사중이긴 한데 아직 못찾았다는 것 같아요. 그저 옆집 살고 그 사람 후배라는 이유 때문에 오늘도 경찰서에 호출받아 조사받았다죠."
 "아.. 그렇군요.."
 모르겠다는 말에 기운이 빠진것인지 그녀는 힘 없이 대답을 했다. 어떤 연유로 선배를 찾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저기.. 저희 옆집에 선배가 살고 있는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야.."

-스윽

 "그 사람이 3차 실험자니까."





 백길훈에게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2번 상황'의 피 실험자인 최미호가 예상을 뛰어넘는 과격함과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였다. '제 1번 상황'의 실험자와의 접촉에서도 스스럼 없이 그를 살해하려 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제 4번 상황'의 실험자와 접촉하려 한것은 '카운트'에서 '제 3번 상황'의 실험자에 대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이 도시에 남아있는 것은 2번과 4번 최미호와 유영아 뿐인데 3번인 이서호가 임시도시를 벗어난 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듯 했다. 
 다른 실험자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겠지만 그녀가 우리와 '카운트'에게서 알아낸 정보는 군데군데 이가 나가있는 만큼 불확실한 부분을 스스로 메워나가며 확인하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예상보다 실험 내용에 충실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이 도에 넘쳐 이대로라면 실험에 지장을 초래 할 수도 있겠다. 

 괜한 자극을 줬다가 같이 달아난 4번에게 상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일단 2번의 추격은 시간을 둬가며 하도록 하였다. 백길훈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하자 그가 알았다며 이 근방으로 온다는것 같았다.
 실험 상황에 맞추기 위해서는 백길훈이 아닌 내가 4번과 먼저 만나야 할테지만 긴급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게 된듯하다. '기관'에도 이미 보고를 마친 상태이니 유영아에게는 아쉽지만 다른 실험자를 찾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모든 것은 정해 놓은 대로 돌아가고 있다.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