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4_1 제 3 상황 [불신]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31. 22:19
 
".... 마.. 말도 안돼.."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당장 지나고 있는 구간에서 부터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상하다. 
미칠듯이 씬 아울렛을 향해 달렸다. 갑작스럽게 달리다 보니 실수로 한번 넘어져 구르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몸이 아픈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 백길훈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없어.."
 되돌아온 화재현장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에게 서류철을 건네줬던 백길훈도, 그의 바지를 붙잡고 울며불며 사정하던 이민철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온지 10분도 안되었는데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서류의 내용대로 내 행동을 예상했다면 순순히 다시 만나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어디엔가 개인차량이라도 숨겨뒀다가 내가 자리를 뜸과 동시에 유유히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된다.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백길훈씨! 백길훈씨!!"
 먼저 가버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혹 이 주변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조금더 자비로웠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아 있는 힘을 다해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내 목소리가 텅빈 화재현장에 메아리쳐 되돌아올 뿐이였다.
 
다시 고개를 넘어 시가지가 보일때까지 달렸다. 
 "허억 허억."
 심장이 터질듯 달려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시내를 보았다. 건물도 그대로 다리도 그대로.. 전부 그대로 였지만 딱 두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자동차. 
 하나는 사람.

어째서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오는 시간동안 사람도, 자동차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이것은 도시가 아니다. 마치 유령을 보는 기분이다.
 내용물은 텅비어 가죽만 남아버린 죽은 짐승같다.

 어쩌지 이제 어쩌면 좋은거지. 라고 중얼중얼대며 공황에 빠져있던 도중. 그가 줬던 서류철의 마지막 즈음의 내용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백길훈이 아닌 진짜 전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까지 거짓은 아닐것이다. 분명 아닐것이다.
 나는 잠깐 멈췄던 다리를 움직여 다시 한번 달렸다. 



 "안녕하세요?"
 그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안녕하세요.."
 나 역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다급하게 달려온 방에는 본적 없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이렇다할 특징도 없고 얼굴도 평범한 그냥 길가다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범용적인 분위기의 남자였으나 겉 모습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백길훈도 그러지 않았던가.

 "누구시죠?"
 "다시보니 반갑죠? 반갑지 않아도 반갑다고 해 주는겁니다."
 나의 질문과는 다른 대답을 하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 거렸다. 백길훈은 집에 돌아가면 전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실험에서 전달자나 접촉자가 각각 한명씩 두명뿐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는 전달자 일 수도. 아니면 백길훈과 마찬가지인 접촉자 일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보니 반갑다고 하는 점은 꽤나 의아했다. 난 그를 처음 보는 데 그는 나를 한번 혹은 그 이상 만났던 사람같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조금 의아할겁니다. 일단 사실인건 우리가 두번째 만났다는 거지요."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을 하지 못하도록 해뒀다고 해야겠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기억을 하지 못하게 해뒀다니.
 
 "오늘이 몇일이죠?"
 그의 질문에 손을 꼽아 날짜를 세봤다.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어제밤 편의점에 갔다가 여자 강도를 만나고 집으로 도망쳤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다. 이내 깨어나 백길훈과 만나게 되고.. 아까전 씬아울렛에서..

 "그야... 어제가 13일이였으니 오늘은 14일이.." 

  [원래는 21일, 즉 3주 였던 실험 기간을 1주로 줄이는 것으로 합시다. 물론 시작날 부터 계산해서 말이죠. 그러면... 지금이 3일째니 4일 남으신 것이겠군요.]

 갑자기 머릿속에 백길훈이 하던 이야기가 맴돌았다. 그당시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던 말들 중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난 그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 오늘은 14일이 아닌것인가?
 "3일째?"
 멍하니 뱉어버린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안쓰러운듯 나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생각나신것 같군요. 하지만 멀었습니다. 혹시 이건 기억 나십니까?"
 그는 안주머니에서 내용물이 남아있지 않은 빈 주사기를 하나 꺼내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나보고 기억나느냐 물었지만 난 대답 하지 못하였다. 

 이상했다.
 모르는것 투성이에 기억하지 못하는것 투성이였다. 잠깐 애초에 이 남자가 하는 말은 정말 진실인것인가?
그와 나는 이미 한번 이상 만났던 적이 있는 것일까? 오늘은 오늘이 아닌것인가? 14일이 아닌 다른 날인것인가?

 "꽤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기억도 뒤죽박죽이고 아마도 남은 기한도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알고있으니까요."

 그는 내 실험기간이 줄어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확신이 뭍어있었기에 나에 대한 거의 모든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백길훈이나 나를 실험용 쥐색기로 쓰는 기관에서 연락을 해줬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들 손바닥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였다.

 "아마 실험에 대해서는 피드백이나 접촉자에 의해서 들었을텐데요. 그는 거짓말도 하지만 실험에 대한것중에는 진실도 있습니다. 사실 이 실험에서 이서호씨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은 저 뿐입니다만.. 지금으로썬 저 역시 믿기 어려운 상태일겁니다.
 일단 실험에 대한 지령을 들으셔야지요. 이서호씨가 완수해야할 지령은 '진실을 아는것' 입니다. 무엇에 관한 진실인지는 어느정도 감을 잡으셨겠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연락을 위해서 항상 휴대폰을 소지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서호씨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서호씨가 저희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휴대폰이 꼭 필요하니까요."

 "진실을 아는것..?"

 백길훈이라는 남자에게 속아 실험 기간도 단축당하고 이틀동안의 기억까지 빼앗겼는데 그런 나에게 진실을 아는 것이라니. 그가 말하는 핵심은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혹은 무엇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서호씨의 기억은 이번 실험을 위해 살짝 조작되었습니다. 저희 기관에서 개발한 약물과 약간의 최면효과를 이용해서 이틀간의 기억에 커버를 씌워둔 것이죠. 실험이 종료되는 대로 기억은 다시 되돌려 드릴테니 걱정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