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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1_1 프롤로그


 왠지 모를 추위에 으슬으슬 몸이 떨려 눈이 떠졌다.
다섯 평 남짓 되는 싸구려 원룸이지만 난방은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조차도 아닌걸까.

 “...”
 집 주인을 비난하려던 찰나 방문과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닫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창문은 잊어버린 듯 하고 방문은 닫히다 말고 제풀에 다시 열려 버린것이겠지.
“추워 죽겠네..”
 이상기온이라고 했던가. 낮에는 반팔티를 입고 다녀야 할 만큼 해도 뜨겁고 공기도 더운 편인데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원래 계절의 날씨를 되찾은 듯 쌀쌀하기까지 하다. 열린 문틈으로 도둑처럼 들어온 것이겠지. 이놈의 냉기들.. 

-탁
방문을 닫고 창문을 밀었다. 이제 조금 지나면 방은 다시 따뜻해질거라 믿고 잠도 깬겸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내가 이 도시라고 부르기도 뭣한 곳에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반년. 수도에서 상당히 떨어져 인구수도 많지 않고 그저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점 하나 뿐이 없는 중소도시이지만 꽤 사연이 많은 동네다.

 어느 날 갑자기 정부에서 불쑥 임시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며 지방 한곳의 소 도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리 만든 것이 이곳 ‘Not-None’이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이름이랄까..
 도시면 도시고 마을이면 마을인거지. 임시도시라는 명칭은 어디에서 온것인지 목적은 무엇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 도시의 건설이 완료되었고 인구의 유입을 위해 ‘지원금’이라는 카드를 내놓은 정부 및 지방 자치단체들의 꼬임에 꽤 많은 빈민층과 백수들이 유입되었다.
 가족 단위에는 주택과 상당한 금액의 생활비가 지급되었고. 개인단위로 유입된 인구, 소위말하는 원룸족들 에게는 원룸을 얻고도 남을 만한 초기 지원금과 매달 00만원 정도의 생활 보조비가 2년간 개인의 통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보조비가 지급되고 나면 그저 방이 있다는 것 정도 일뿐 최소한 아르바이트 정도는 해야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이기에 알바 하나둘 정도씩은 필수 였다.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원룸 촌이 많고 그나마 있는 아파트 단지들도 가족단위 보다는 원룸을 얻을 돈으로 타인들과 한 거실을 쓰는 방법을 택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도시와 임시도시.

 어느날 갑자기 시로 취급되다 군으로 격하되버리는 걸까나. 정도로 생각하며 임시도시의 지역발전 및 개발같은 거야 어딘가 도시에 박혀있을 부흥회 따위가 신경 쓸 일이기에 나 역시 보조금 지원이라는 단 한 항목에 이끌려 이 도시로 이사오게 되었다. 도시..라고 불리기에는 인구가 상당히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시내정도는 있으니까 썩 불편한 것은 없지만 확실히 괜찮은 영화관도 없을 만큼 심심한 곳이다. 

-꿀꺽꿀꺽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들이키다가 말고 얼마전 들어온 광고지를 바라봤다. 레귤러사이즈 콤비네이션 피자와 후라이드치킨, 콜라 500ml짜리가 1만6천900원이라..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들어 살펴본것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저렴한 가격일지 모르지만. 혼자 지내는 만큼 한끼..혹은 두끼 정도의 식사에 17000원을 소비한다는 건 꽤나 심한 사치이지 않을까.. 냉장고에 남아있는 슬라이스 치즈는 제쳐두고 지어놓은 밥이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후우”
역시 없다.
“밥부터 해야하나..”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일단 밥을 해야 할 듯 했다. 싱크대에서 적당한 밥사발을 가져와 냉장고 옆에 붙어있는 쌀통 버튼을 눌렀다.

-달칵
..설마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밥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근본이 되는 쌀이 떨어진 상태였다. 왜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거지.. 이미 시간은 9시가 훌쩍 넘어버렸으니 근처 편의점에서 쌀을 구해야 할텐데.. 편의점은 비싸고.. 애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은 간단하게 치즈라면으로 하자.

“에..”
 열어본 찬장에는 라면봉다리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쌀도 없고. 라면도 없고. 있는거라곤 라면에 즐겨 넣어먹는 슬라이스 치즈뿐이다. 오늘밤의 편의점은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곳이 였나보다.


-*-

 간단한 후드티 하나를 대충 걸쳐 입고 나온 골목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밤이면 전부 집에만 틀어 박히는 것인지 이 동네 뿐만 아니라 이 도시 자체의 야간 유동인구는 거의 없어 보인다. 치안이야 야간에 방문을 열고 잔다고 쳐도 도둑조차 들지 않을 정도 안전한 곳! 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도둑질 할 사람조차 부족한 곳이랄까.. 애초에 10만 조금 넘는 이런 인구가지고 ‘시’라고 하는 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일텐데 말이다.
 

 주황색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을 지나 차가 다닐 수 있을 법한 도로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길가에 인기척은 보이지 않았고 멀리 떨어져있는 아파트에도 불이 켜진 곳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왠지 갑자기 무서워졌다랄까. 얼마전 봤던 공포 스릴러물도 생각이 나고 지나치게 조용한 주변 환경에 움찔했는지도 모른다. 꽤 오래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려 보자 그나마 무서운 생각은 조금 떨쳐 낼 수 있었다. 고작 5분정도만 걸어가면 편의점인 것을.. 도심 주제에 도로를 이리 어둡게 방치한다니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시청의 교통과나 시설과에 문의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어둑한 도로를 거의 벗어났을 무렵 편의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어서 라면이나 사가지고 돌아가야지  영 찜찜해서 견딜수가 없군. 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저기요."
 길 한구석에서 느닷없이 사람이 튀어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터라 얼마나 놀랬는지 발을 헛디딜뻔 했다. 나이는 스물 초반쯤 되보이는 평범한 아가씨. 손에는 손수건이나 뭔가 헝겁으로 감싼 한뼘 내기의 물건이 보였지만 그저 휴대폰이나 게임기 혹은 PMP인것 같았다. 잠시 휘청 하긴했지만 그나마 민망하지 않았던건 놀란 정도에 비해서 티가 조금 적게 난것인지 나를 부른 상대방은 내가 놀란 사실을 모르는듯 말을 이어왔다.

 "여기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어디쯤에 있죠?"
 그저 길을 묻는 행인A였던 건가. 그런데 바로 근처에 편의점을 못보고 지나친걸까. 저정도면 꽤 가까운곳에 상당히 눈에 띄게 존재한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지.. 

 "저기 건너편에 간판 안보이세요? 저기 있네요."
 그제서야 편의점을 발견한 것일까.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갔다. 불쑥 말을 걸어 사람을 놀래켜놓고는 자기 용건만 보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가버리다니 예의없는 아가씨로구만. 
 행인A가 그렇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것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나 역시 편의점에 용무가 있던 사람인 만큼. 그녀를 따라가듯 멈췄던 다리를 움직여 편의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탕!!
 "에!!?"
 편의점 문과의 거리가 불과 15미터도 남지 않았을 무렵. 행인A의 아가씨가 편의점으로 들어간지 5초도 되지 않아 편의점 안에서 공기를 찢는듯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괴(怪)음이 들려오자 걸어가던 다리를 우뚝 멈춰버렸다. 분명 편의점에서 들려온 저 소리는  TV에서도 가끔보고 몇년전 군복무 시절에도 들어봤던 소리다. 하지만 왜? 그보다 어째서 저게..? 설마 아까 그 여자 손에 들고있던게..

 "허억 허억.."
 생각의 끝에 다다르기도 전 몸이 먼저 본능적으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여 왔던 골목으로 달려들어가 가쁜 숨을 소리죽여 내쉬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지 않은가..
 총기류 라는건 이 나라에서는 민간인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소지품 같은게 아니다. 아니 애초에 총이라는건 구하기 쉬운 물건이 아닌데다 대부분 쓰이는건 사냥에서나 쓰이는 공기총정도가 아닐까. 아까의 손수건 안쪽 물건이 총이라면 분명 권총정도 일텐데 그런걸 스물 초반정도 되보이는 옆집사람 같은 양반이 들고있던 것일까. 소지의 문제는 둘째치고 편의점 들어가고 거짐 바로 소리가 났으니 얼굴도 안보고 문답무용으로 쏴버렸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편의점 위치를 물어볼 정도로 이 동네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잠깐..내 얼굴 기억하지 않을까."
 심란함을 주체 할 수 없는와중 '어째서 편의점 알바를 그 여자가 쏴버린 것일까' 보다 '길 안내 해준 남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다. 골목 바깥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왔던 길을 바라봤지만 인기척은 없는듯하니 아직 따라온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모아 전력으로 그곳을 도망쳐 원룸으로 돌아왔다.

 -덜컹. 쾅!
 방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문을 닫아버리고 열쇠를 채웠다, 창문을 닫고 커튼으로 빛을 가렸다. 아까전 까지만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문을 열고 지냈지만 더 이상 안심 할 수 있는곳이 아니게 되었다. 터덜터덜 귀찮아 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의심없이 걸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여자는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쏴버린 만큼 나에게도 간단하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경찰에 신고부터.."
 긴장한 나머지 손이 달달떨려 휴대폰 버튼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뒤 연결된 경찰서에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면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것 조차 쉽지가 않았고 신고를 받은 경찰서 쪽과는 현장을 확인하고 전화해 주겠다며 연결을 끊어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내려놓고 연락만 기다리게 되었다.

 -우웅 우웅
 경찰서 쪽에서 현장을 확인한 것일까. 낯선 번호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 편의점을 확인한 순경이나 형사의 번호겠지.

 "여보세요?"
 


-090417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