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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4_1_1 제 3 상황 [불신] 그리고.


그가 돌아가고 혼자 방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진실을 아는것]

그가 나에게 남긴 핵심 키워드는 [진실]. 
 생각해보면 애초 무작위로 인원을 선정해서 실험을 진행 한다는 개념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가에서 실험을 진행 하는것이라 해도 사전에 동의도 없이 이딴 실험에 참가할 사람이 어디있는가이다. 실험의 전반적인 부분을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 이 실험으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나 이외에 다른 실험자들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나 지금의 나에겐 2일간의 기억을 빼앗고 실험의 기간을 속임수로 단축시킨것 두가지 뿐인데. 그것만으로 실험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일까? 또한 무엇을 체크 하는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실험 내용이나 결과를 알기 위해서 그들이 나에게 어떻게 손을 쓴것일까.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문다.
 


 밤이 깊어진뒤 간단히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와봤다. 원룸을 살짝 벗어나 근처의 다리를 건너자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길을 걷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로등도 밝고 멀리 보이는 건물들에는 하나같이 불이 켜져있다.
 놀림을 당하는 건가 싶을정도로 이상한 광경이였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불이 켜져있는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딸랑
 내가 들어간 곳은 삼층짜리 상가 건물의 1층.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점이였다. 가게 내부엔 손님은 물론이고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가게의 주방까지 성큼성큼 신발을 신은채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뭐..뭐야이거.."
 들어가본 주방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가지런히 놓여있을 그릇도. 가스렌지도 싱크대나 냉장고 같은것도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휑하니 시멘트 벽만 있을 뿐이였다. 연극 무대의 뒤편을 보고있는듯한 기분이랄까.. 
 가게에서 뛰쳐나와 다시 가게 내부를 바라보았다. 딱 밖에서 바라봤을때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만큼만 사물이 있고 그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셈이였다. 
 바로 옆 건물을 들어가 보았다.
 회계사 사무실. 
 벽에 걸린 지도나 소파 테이블등도 멀쩡히 있지만 세워져있는 칸막이 너머 방 깊은곳의 사무처리 책상에는 파일철 하나없는 휑뎅그레한 공간만 있을 뿐이였다. 
 그다음 건물도.. 그다음 건물도.. 1층뿐만이 아니라 2층마저도 3층마저도 그런식이였다. 
무작정 달려 대충 아무 골목이나 들어갔다. 주택가가 빼곡히 있는 골목길사이로 아무 집이나 골라 잡아 초인종을 눌러대었다. 

 -띵동 띵동
 열 몇차례의 누름에도 인기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옆집도.. 그 옆집도.. 골목의 끝까지 갈때까지 내가 누르는 초인종에 반응을 보이는 집은 단 한집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집의 담을 넘었다. 

 자그마한 마당의 일반 주택건물에 그저 평범한 계단과 현관문이 보이고 거실의 베란다 창문을 통해 집안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난 개의치 않고 베란다를 통해 거실창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간단한 가구조차 없이 건물과 불만 켜져있을 뿐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도시 전체가 텅 비어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어제밤 내 방에서 깨어나고 만난 사람은 전달자와 접촉자 그리고 환자복을 입고있던 이민철이라는 남자 세명뿐이다. 

 "연극 세트같잖아.."
 
  연극세트..
 그랬다. 도시 전체가 잘 만들어놓은 드라마 촬영 세트장 같았다. 딱 필요한 부분에만 사물이 있고 건물이 있고. 그이외 필요하지 않은 것은 텅 비어있는 그런 곳이였다. 불과 2~3일 사이에 도시 전체를 비운것일까. 

 '편의점!'
 3일전 총격이 일어났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확 트여 잘보이는 구조라 그런지 편의점 내부에 물건은 멀쩡히 진열되어 있었지만 문은 잠겨있었고 아르바이트 생은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이라고 보기엔 폴리스라인도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 신고가 접수가 되긴 했던것일까.
 터덜터덜 걸어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휴대폰을 한손에 들어 통화 내역을 다시 살펴보았다.  

 -181-4400
 -164-8574

 많은 번호들 사이 이 이질적인  일곱자리 전화번호는 분명 이틀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편의점의 강도를 목격하고 방으로 돌아와 전화를 받았고. 그사이 이틀이라는 기억이 사라진뒤 강도를 목격한 날이라 생각하고 깨어난 것이 어제였다. 
 불과 이틀.  이틀 동안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물건들 마저 사라졌다. 이 커다란 도시 전체를 이틀만에 옮기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잠깐..그 반대라면..?"
 무슨 바보같은 발상인지는 몰라도 혹시 그렇다면.. 하는 생각에 냉장고로 다가갔다.
너무 단편적일지 모르지만 냉장고 안에 넣어뒀던 슬라이스 치즈가 그대로 있다면 몰라도 뭔가 변화가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열려진 냉장고 안에는 슬라이스 치즈 대신 작은 종이 쪽지가 들어있었다.

 [이곳은 치즈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 알겠어. 드디어 알겠다구. 이런 거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