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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루니즈

[포토픽션] 그곳(The Place) 1_2 실종.실험.출현

 
 -여보세요?

 애초에 마른 체형이라 얼굴도 갸름하고 수염은 안 깎은지 이틀은 되어보여 초췌함을 더해준다.
잦은 날새기 업무 탓인지 눈밑은 시커먼데다. 충혈된 최혁호의 눈은 전화를 받는 내내 껌뻑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 김형사. 나야. 지난번 이야기 했던 편의점 신고 관련해서 뭐좀 알아낸 것 있나?”
 그의 통화가 길어짐과 함께 그의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의 한숨이 길어지고 있었다.
 
 유영아.
 OO대학 2학년에 재학중으로 ‘어느날 갑자기 옆집 사는 선배가 증발하는 바람에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처량한 신세’ 라 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조용한 도시라고 알고 있었지만 의외로 사건, 사고가 많은 것인지 눈앞의 형사님은 벌써 네 차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바쁜건 알겠지만, 이렇게 사람을 잡아두고 벌써 몇 번째야.. 진짜..’

 통화가 길어질듯한 조짐이 보이자 그녀는 이내 참지 못하고 혁호의 말을 끊었다.
 “저기요.. 제가 좀 바뻐서 그러는데요..”
 그녀의 말에 그는 다시 한번, 그러니까 네 번째 보여주는 특이한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려 영아를 바라보았다.
 “아.. 잠시만. 응응. 금방끝나니까 잠깐 기다려달라구 아가씨.”
 “흐으..”

 그녀의 길게 늘어지는 한숨을 뒤로 한 채, 마저 몇분 간의 통화를 이끌어가던 그가 통화를 마치고는 미안한 듯 예의 그 쓴웃음을 다시 보여줬다. 어찌보면 찡그린것도 같고.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이 어느 노래가사를 떠올리게도 했다.

 “미안, 미안. 워낙 바쁜데다 이번일은 우리도 꽤나 곤란한 일인지라.. 이렇게 출두해서 조사받는건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거야. 사흘간 고생했어.”
 “바뻐 보이네요.”
 아마도 방금 전화했던 김형사라는 사람이 조사한 편의점 신고라는것도 이번일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그녀는 살짝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하였다. 이런 시기에 같이조사하는 일이라면 분명 이번 실종사건 관련일테고 사라진 선배와도 관계가 없진 않을 것이다. 크게 관심있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 궁금한 것은 사실이였다.

 “자 마지막으로 정리해보면 7일날 밤9시 55분 경 옆집 사람이 뛰어들어오듯 현관을 지나간 소리와 함께 문을 강하게 닫는 소리를 들었다는것. 10시 30분쯤의 비명소리. 10시35분 경찰에 신고. 40분쯤에 도착한 경찰관들과 옆집에 찾아 갔을땐 집에 아무도 없었다. 라는것 까지. 맞지?"
 “네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진술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녀 스스로가 진술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실종자..랄까 피해자 이서호의 방은 원룸 2층 끝방에 길은 반대편의 계단이 유일한 통로이고 창문은 창살로 가려져 있어 복도를 통하지 않는다면 나갈 수 없는 구조. 비명을 들은 직후 잠깐 문을 열어 옆집을 봤으니 별다른 특이한 것은 없었다는 것, 이후 창문으로 복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간사람은 없었고 경찰에 신고한 직후 복도에서 경찰을 기다렸고 도착한 순경들과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이거군."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그날 밤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대충 입고 느지막히 외출을 하던 선배를 본 기억이 있어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건물로 이사 온 지 일주일도 안됐지만 그 정도면 옆집사람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봤던 학과 선배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학교에 관련되어 알고 있는 사이일 뿐이고 대화를 해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 였기에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사라졌다.
 
 그덕에 별 관계도 없는 자신이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과 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이렇게 경찰서에 사흘이나 나와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겐 실종의 안타까움 보다는 잦은 경찰서 출두의 짜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오네.. 우산 안가져 왔는데..”
 낭패다.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와 보니 비가 오고 있다.
집에서 나올때에는 조금 우중충한 정도였는데 어느새 날도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고 있다. 아까 태워다 준다던 호의를 괜히 거절한걸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왠지 기분 나쁜 사람이였으니까..

 잠깐 기다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요금은 비교적 저럼한편이고 오히려 버스가 비싸고 드물다. 확실히 물가부터 좀 이상한 동네다.
 "OO원룸촌 OO원룸 부탁드려요"
 멀지 않은 거리이니 기본요금에서 한틱이나 두틱정도 올라가겠지. 빨래도 잔뜩밀렸고 레포트도 다 쓰지 못했는데 시간은 벌써 9시라니.. 시계를 보고 휴대폰을 뒤적거려 통화목록을 살펴보았다
 제일 최근부터 경찰서 경찰서 학과친구 학과친구 경찰서 집 학과친구.. 경찰서관련 전화가 많기는 했구나.
 "아..?"
 -부재중 통화 (1)건 181-4400 
 "무슨 전화번호가 이래?"
 무심코 지나칠뻔 했다가 눈에 띈 부재중 통화항목에는 지역이 어디인지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벌써 나흘전 등록된 부재중 전화였지만 일반전화도 아니고 휴대폰도 아니다. 옆나라의 스펨인건가 싶었지만 그런건 훨씬 더 복잡한 번호였던것 같았는데..

 -뚜루루.. 뚜루루..
 다시 걸어본 송신자 측에서는 착실하게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잠깐의 착신음이 들려오고 이내 전화가 연결된 듯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에? 뭐야이거"
-에? 뭐야이거
 "장난 전화인건가. 황당하네"
-장난 전화인건가. 황당하네

 연결된 전화에서는 우스꽝스럽게도 내가 하는 말이 그대로 들려왔다. 신종 피싱일까 아니면 단순한 낚시인걸까.
정체불명의 번호와 휴대폰을 가지고 씨름하다보니 어느새 원룸 근처까지 올수 있었다. 택시비는 2천700원정도로 예상한 만큼 나와주었고 은근 만족한 나는 손가방을 열어 요금을 지불하였다.

 -즈즈즈즈.. 즈즈즈즈..
 택시에서 내려 멀지않은 내 방 창문을 바라보는 참, 매너모드로 되어있는 휴대폰이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전화가 온걸까.

 -전화 수신중.. 번호 [ 147-8957 ]

 방금 확인했던것과 비슷한 전화번호였다. 좋아 이 전화를 받으면 누가 장난전화를 건것인지 연결 할 수 있겠지. 시덥잖은 장난이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줄테다.

 "여보세요?"
 [ 귀하께서는 4차 실험 대상자이십니다. ] 
-백 사십 칠만 팔천 구백 사십 팔

 "예? 누구세요? 실험?"
 [ 해당 실험에 대한 거부권은 없으며 이것은 최초 피드백(FeedBack)에 대한 응답입니다. ]
-백 사십 칠만 팔천 구백 삼십 이

 "저기요. 무슨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여보세요?"
 [ 접촉자(Contacter)와 전달자(Messenger)를 구분하시기 바라며.. ]
- 탁!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없이 소귀에 경읽는듯 하는것이 반대편은 자동응답기던 모양이다. 도통 영문을 모를 소리만 줄줄해대는 데다 중간중간 낮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는 듯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딴 기분나쁜 전화는 무시하는것이 답이겠지.

 거칠게 휴대폰을 닫아 버리고 계단을 올라 복도를 지났다. 꼭 지나가고 나서야 켜지는 실내등이 가소롭기도 했지만 저딴거 없이도 잘 들어갈 수 있으니깐. 

 [어..?]

 처음에는 어두워 잘 몰랐지만 점점 걸어가다보니 복도 끝쯤에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실루엣으로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분간하기가 어려웠지만 옆방의 선배도 사라진데다 아까 전의 왠지 모를 장난전화가 머릿속에 맴돌아 덜컥 겁이 났다. 

 걸음걸이는 점점 느려져 결국 실루엣을 어느정도 알아 볼 수 있게된 위치가 되자 나는 우뚝하고 멈춰버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구세요?"